'석유 부자' 텍사스에 ESS 시설이 뜨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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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TM 댓글 0건 조회 31회 작성일 24-09-06 09:27본문
지난달 29일 오전 미국 텍사스주 주도(州都)인 오스틴시 인근 소도시 플루거빌.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과 들판 사이를 차로 20여 분쯤 달렸더니 축구장 두 면만 한 땅에 하얀색 컨테이너 50개와 송전탑이 삐죽 솟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에너지 저장 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 기업 키캡처에너지(KCE)가 세운 100㎿짜리 ESS 시설이다. ESS란 일종의 ‘전기 댐’ 역할을 하는 거대 배터리 시설이다. 마치 홍수 때 물 가두고 가뭄 때 물 공급하는 댐처럼, ESS는 태양 쨍하고, 바람 강할 때 태양광·풍력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부족할 때 내보내는 역할을 하며, 들쭉날쭉한 양이 약점인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보완한다.
WEEKLY BIZ가 찾은 플루거빌 ESS 시설을 관리하던 KCE 직원 호세 도밍게스씨는 “우리는 스마트폰에 ‘관리 앱’ 하나 깔아 시설 현황을 원격으로 체크할 수 있다”면서 “지금은 충전 중”이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등 전력 다소비 첨단 산업이 급성장하고, 전기차 등의 보급이 늘면서 ESS 시설 수요도 함께 급증하는 추세다. 에너지 관련 조사 분석 업체인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미국 내 그리드 규모 ESS 설치 용량은 4년 뒤인 2028년 79.6GW로 지난해(17.4GW)의 4.6배 수준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미국에서도 ‘석유 부자’로 통하는 텍사스가 ESS 시설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2021년 SK E&S가 인수한 KCE 측은 “현재 텍사스와 뉴욕에서 총 424㎿ 규모의 ESS 시설 12곳을 운영 중인데, 올해 중 텍사스에만 총 200㎿ 규모의 ESS 시설 두 곳을 더 가동할 예정”이라고 했다.
◇'석유의 주’ 텍사스, ESS 중심지로 부상
KCE의 플루거빌 ESS 시설에서 차로 10여 분 달리면 태양광 패널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너른 들판이 나온다. 대략 4㎢에 태양광 패널이 빼곡한 모습이었다. 미국에선 인공지능(AI) 열풍으로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데다, 내연기관차와 가스 보일러를 전기차와 히트 펌프로 대체하는 전기화(化) 움직임이 일면서 전기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2030년 미국 내 데이터센터의 전기 사용량이 2023년보다 35GW 늘어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 연방정부나 주정부 차원에선 늘어나는 전기 수요를 친환경 에너지 발전으로 충당하려는 노력이 이어진다. 이에 “텍사스나 캘리포니아에선 대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는 게 현장 안내를 맡은 SK E&S 관계자의 설명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텍사스는 주 전체 발전량의 30.9%를 태양광·풍력 발전으로 충당했다. 텍사스는 미국 내 원유 생산의 40% 이상을 담당하지만, 친환경 에너지 발전 비율이 캘리포니아(34%)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올라온 것이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늘어난 만큼 ESS 시설 설치도 이어지고 있다. 제시 노프싱어 맥킨지 파트너는 “ESS는 하루 이내의 짧은 기간에 전력 수요와 재생에너지 발전 사이의 불일치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텍사스는 이미 미국 내에서 캘리포니아 다음으로 ESS 시설이 많이 설치된 주다. 다른 주에 비해 ESS 시설 인허가가 쉽고, 기존 전력망에 ESS를 연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 역시 캘리포니아의 절반 수준이라는 장점도 있다. 또한 전기 가격을 철저히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하는 메커니즘 역시 ESS 투자 매력을 높인다.
앞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꾸준히 늘 것을 감안하면, ESS 시설을 더 건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텍사스에서 가정용 미니 ESS 시설을 설치해 주는 기업인 베이스파워 관계자는 “텍사스에선 지금도 정전 사태가 다른 주보다 빈번한 만큼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ESS 성장”
미국 정부는 ESS 설치를 장려하고 있다. 2022년 제정된 IRA(인플레이션감축법)를 통해 ESS 설치 비용의 30~50%만큼 투자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하지만 미국 보수 진영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도입한 IRA가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악법’이라 비난한다. 석유 생산량 1위 국가인 미국이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그리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IRA를 폐기하거나 대폭 수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트럼프가 재선된다고 해도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란 큰 흐름을 돌이키긴 어려울 것이란 전문가 전망도 만만찮다.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레드 스테이트’들이 오히려 IRA로 인한 친환경 투자 혜택을 더 크게 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 집계에 따르면, IRA 관련 친환경 기반 시설 투자금이 가장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은 텍사스(665억달러)인데, 이는 캘리포니아(212억달러)의 세 배가 넘는 수준이다.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텍사스나 오클라호마가 일사량이나 풍량 같은 자연환경이 재생에너지 발전에 적합하다 보니 이러한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는 해석이다.
이런 분위기 속 KCE는 미국 전역에 10GW 규모의 ESS 시설을 추가 설치하겠다는 장기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오승용 SK E&S 부사장은 “ESS는 미국 대선 결과와 관련 없이 계속 탄력을 받을 분야라고 보고 있다”며 “텍사스 등에선 ESS 시설이 안정적 전기 공급은 물론 투자 유치나 고용 창출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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